다음 두 문장은 설명을 위해 만든 가상의 예입니다.
새 방식을 도입한 뒤 이용자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새 방식을 도입한 뒤 이용자 만족도가 73.6%로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문장에는 한 번 더 눈이 갈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 설문지가 있고, 계산표가 있고, 결과를 확인한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문장은 의견처럼 들리지만 두 번째 문장은 증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몇 명에게 물었는지, 누구에게 물었는지, 질문은 무엇이었는지, 언제 조사했는지 모릅니다. 새로 얻은 정보는 소수점이 붙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숫자는 현실을 비교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강력한 언어입니다. 문제는 숫자가 틀릴 때만 생기지 않습니다. 숫자가 너무 그럴듯해서 질문을 멈출 때도 생깁니다.

그림 1. 소수점이 붙는 순간 문장은 의견보다 측정 결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30초 핵심#
- 숫자는 모호함을 줄이지만, 소수점의 길이가 근거의 질까지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 숫자 안에는 정의·분모·기간·평균·비교 기준이라는 사람의 선택이 들어 있습니다.
- 숫자를 잘 믿으려면 값만 보지 말고 만들어진 경로·불확실성·바꿀 행동을 함께 봐야 합니다.
[1] 숫자는 사실보다 먼저 신뢰를 얻습니다#
‘많이 좋아졌다’보다 ‘37.2% 좋아졌다’가 더 믿음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37.2%는 가상의 숫자입니다. 그런데도 ‘많이’보다 단단한 측정 결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애매한 형용사가 비교 가능한 값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아직 원자료도 계산식도 보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있다는 사실과 그 숫자에 좋은 근거가 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계산됐다는 것과 제대로 계산됐다는 것도 다릅니다.구체적인 숫자는 ‘누군가 자세히 알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힙니다.
실험 연구에서도 둥근 숫자보다 세밀한 숫자가 이후 추정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조건이 관찰됐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숫자를 말한 사람에게 관련 지식과 전달 의도가 있다고 여겨지고, 그 세밀함이 과제에 필요할 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1]소수점 자릿수만으로 정확성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측정학에서 ‘정밀도’는 같은 대상을 반복 측정한 값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정확도’는 측정값이 참값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가리킵니다. 반복 측정값들이 서로 가깝더라도 참값에 가까운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2] 체온계가 같은 조건에서 늘 실제보다 0.5도 높게 표시된다면 측정은 일관될 수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의견에는 말한 사람이 보이지만, 숫자는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이라는 말에는 해석한 사람이 드러납니다. 반면 표와 그래프에서는 질문을 정하고 자료를 고른 사람이 뒤로 숨기 쉽습니다. 숫자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 숫자는 판단을 없애지 않고 앞단으로 옮깁니다#
모든 숫자 앞에는 ‘무엇을 셀 것인가’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만족한 사람’은 5점 척도에서 4점과 5점을 고른 사람일까요. 5점만 고른 사람일까요. 정의가 바뀌면 같은 응답에서도 만족도는 달라집니다.모든 비율 뒤에는 ‘무엇 중에서’라는 분모가 있습니다.
“열 명 중 여덟 명”과 “응답한 사람의 80%”는 같은 말일 수도, 전혀 다른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응답하지 않은 사람을 빼도 되는지는 숫자가 아니라 조사 설계가 답해야 합니다.표본이 크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 명을 조사해도 알고 싶은 사람들과 다른 집단만 조사했다면 답은 빗나갈 수 있습니다. 숫자의 크기보다 먼저 볼 것은 그 숫자가 누구를 대표하는가입니다.평균은 차이를 지우는 데 탁월합니다.
두 집단의 평균이 같아도 한 집단은 값이 가운데 모여 있고, 다른 집단은 양끝으로 갈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평균은 유용한 요약이지만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지는 않습니다.분석 방법도 숫자의 일부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29개 분석팀이 같은 데이터와 같은 질문을 분석했는데, 변수와 모형을 다루는 선택에 따라 효과 추정치와 결론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3] 이는 통계가 마음대로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거쳐 그 숫자가 나왔는지 공개해야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림 2. 숫자에서 사라진 판단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숫자가 만들어지는 앞단으로 이동합니다.
[3] 같은 숫자도 놓이는 자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증감률에는 반드시 출발점이 있습니다.
방문자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면 100% 증가입니다. ‘두 배’라는 말도 맞고 ‘한 명 증가’라는 말도 맞습니다. 무엇을 함께 보여 주느냐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크기는 달라집니다.비교 기준은 숫자 밖에 있지만 의미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20점이라는 값만으로는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습니다. 어제는 10점이었는지, 목표가 100점인지, 비슷한 집단의 평균이 18점인지가 있어야 판단이 시작됩니다.기간을 바꾸면 같은 현상도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루의 급등만 보면 위기로 보이고, 1년의 흐름만 보면 작은 흔들림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짧은 기간과 긴 기간 중 어느 하나가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결정하려는 문제에 맞는 기간인지가 중요합니다.수학적으로 같은 결과도 표현 방식에 따라 선택을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의사결정 연구에서는 결과를 얻는 것으로 표현했을 때와 잃는 것으로 표현했을 때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4] 숫자도 문장과 맥락 밖에서 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처음 본 숫자는 다음 판단의 출발점이 되기 쉽습니다.
불확실한 값을 추정할 때 앞서 제시된 숫자가 이후 추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 효과’는 오래 연구돼 왔습니다.[5] 다만 아무 숫자나 언제나 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실천법은 첫 숫자를 보기 전에 내가 사용할 기준을 먼저 적어 두는 것입니다.
[4] 좋은 숫자는 자기 한계까지 함께 말합니다#
과거 평균 성능은 오늘 이 한 건의 확실성이 아닙니다.
제가 감염병·환경 예측 모델을 연구하고 현장 적용을 고민하며 반복해서 마주한 간극입니다. 과거 자료에서 모델이 전반적으로 잘 맞았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장이 알고 싶은 것은 지금 받은 이 예측을 얼마나 믿을 수 있고, 무엇에 활용할 수 있느냐입니다.숫자의 가치는 그 숫자가 바꿀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보고만 하고 지나갈 숫자와 사람·예산·시간을 움직일 숫자에는 다른 수준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값 하나보다 틀렸을 때의 비용과 되돌릴 조건을 함께 봐야 합니다.불확실성을 밝힌다고 신뢰가 반드시 크게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네 개의 온라인 실험과 BBC 뉴스 웹사이트 현장실험에는 모두 5,780명이 참여했습니다. 연구들을 종합하면, 불확실성을 알렸을 때 숫자 자체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지만 수치 범위로 제시한 경우 감소폭은 작았습니다. 출처에 대한 신뢰는 수치 범위에서는 거의 낮아지지 않았고, 더 큰 감소는 모호한 언어 표현에서 나타났습니다.[6] 연구 하나로 모든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범위를 정직하게 밝힌다고 신뢰가 반드시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숫자를 볼 때 다섯 가지만 복원해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무엇을 센 숫자인가 — 정의
- 무엇 중에서 나온 값인가 — 분모
- 무엇과 견준 값인가 — 비교
- 어느 정도 흔들릴 수 있는가 — 불확실성
- 이 숫자로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 — 쓰임
숫자는 결론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입니다.
숫자가 붙은 말을 믿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숫자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숫자는 아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주면서, 모르는 부분도 함께 드러냅니다.

그림 3. 숫자를 의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만들어진 경로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숫자는 복잡한 현실을 한눈에 보이게 해 줍니다. 그래서 필요합니다. 동시에 한눈에 보이게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맥락을 접어 둡니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73.6%처럼 단단해 보이는 숫자를 만나면, 소수점부터 보지 말고 다섯 가지를 먼저 확인해 보십시오.
정의, 분모, 비교, 불확실성, 쓰임.
숫자가 정확해 보이는 순간, 우리의 판단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어야 합니다.
관련 글#
출처#
[1] Zhang, Y. C., & Schwarz, N. (2013). The power of precise numbers: A conversational logic analysi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9(5), 944–946. https://doi.org/10.1016/j.jesp.2013.04.002
[2] Joint Committee for Guides in Metrology. International Vocabulary of Metrology — Measurement accuracy (2.13); Measurement precision (2.15). https://jcgm.bipm.org/vim/en/2.13.html · https://jcgm.bipm.org/vim/en/2.15.html
[3] Silberzahn, R. et al. (2018). Many Analysts, One Data Set: Making Transparent How Variations in Analytic Choices Affect Results. Advances in Methods and Practices in Psychological Science, 1(3), 337–356. https://doi.org/10.1177/2515245917747646
[4] Tversky, A., & Kahneman, D. (1981). The Framing of Decisions and the Psychology of Choice. Science, 211(4481), 453–458. https://doi.org/10.1126/science.7455683
[5] Tversky, A., & Kahneman, D. (1974).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185(4157), 1124–1131. https://doi.org/10.1126/science.185.4157.1124
[6] van der Bles, A. M. et al. (2020). The effects of communicating uncertainty on public trust in facts and number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7(14), 7672–7683. https://doi.org/10.1073/pnas.1913678117
─────────────────────────────── 이해관계 및 책임 고지
이동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Social Science & AI융합학부 교수이자 한국인공지능 주식회사(AI Korea Inc.)의 대표입니다. 이 글의 견해는 저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 기관이나 연구과제 발주처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과 교육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자문이나 정책 권고가 아니며, 실제 의사결정의 단독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사실에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