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염병이 막 퍼지기 시작한 시점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의 발생 추이를 내다보는 AI 예측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학습에 쓸 자국 데이터는 몇 주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전이학습(transfer learning)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쌓인 데이터로 모델을 미리 학습시킨 뒤, 우리 데이터에 맞게 다듬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어느 나라의 데이터에서 배워야 할까요?
우리와 비슷한 나라를 고르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유행 곡선이 닮은 나라의 경험이라야 우리에게도 잘 옮겨질 것 같습니다.
30개국을 놓고 확인해 보니, 반대였습니다.

그림 1. 자국 데이터가 없는 시점의 감염병 예측은 ‘누구에게서 배울 것인가’를 고르는 문제에서 시작합니다.
이 글은 제가 단독저자로 Expert Systems with Applications(IF 9.4)에 발표한 논문[1]을 일반 독자용으로 풀어 쓴 것입니다. 가을에 시작할 ‘감염병을 예측한다는 것’ 시리즈의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30초 핵심#
- 다른 나라 데이터로 감염병 예측 모델을 학습할 때, 가장 ‘다른’ 나라에서 배운 모델이 가장 ‘비슷한’ 나라에서 배운 모델보다 일관되게 나았습니다.
- 이득은 유사도에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질적인 구간에서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이 나왔습니다.
- 자국 데이터가 없는 신종 감염병 초기에 쓸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단, 검증 조건이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그대로 읽어야 합니다.
1. 왜 남의 나라 데이터가 필요할까 — 신종 감염병 초기의 데이터 공백#
딥러닝 모델은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데이터가 충분하면 강력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구조라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신종 감염병의 초기가 정확히 그런 상황입니다. 예측이 가장 절실한 시점과, 데이터가 가장 부족한 시점이 겹칩니다. 감염병 예측 모델을 만들다 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 초기 데이터입니다.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난 시점에는 그 감염병의 자국 데이터가 아직 쌓여 있지 않습니다.
전이학습은 이 공백을 메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외국어를 하나 익힌 사람이 두 번째 외국어를 더 빨리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장을 처음부터 배우는 대신, ‘언어란 대체로 이렇게 움직인다’는 감각을 이미 갖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델도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유행 데이터로 미리 배운 뒤 우리 데이터로 마무리 학습을 합니다.
문제는 그 ‘다른 나라’를 고르는 기준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직관은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와 비슷한 나라. 저 역시 이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전이학습은 당연히 우리와 비슷한 데이터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당연히’를 데이터로 확인해 본 것이 이번 연구입니다.
2. ‘비슷한 나라’가 당연해 보입니다 — 30개국에서 나온 반대 결과#
실험 설계는 이렇습니다. COVID-19 30개국의 1,143일치(2020년 1월 22일 ~ 2023년 3월 9일) 공개 데이터를 사용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집계(JHU CSSE)와 Our World in Data(OWID)가 출처입니다.[2][3]
각 목표 국가마다 소스 국가 4개를 골라 모델을 사전학습시킨 뒤, 목표 국가 데이터로 마무리 학습을 했습니다. 나라 사이의 유사도는 DTW(dynamic time warping)라는 거리로 쟀습니다. 두 시계열 곡선의 모양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소스를 고르는 전략을 비교했습니다. 목표 국가와 가장 비슷한 나라 4개, 가장 다른 나라 4개, 무작위 4개, 그리고 전이학습 없이 자국 데이터만 쓰는 개별 모델. 모델 자체는 TCN이라는 가벼운 시계열 신경망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가장 다른 나라들에서 배운 모델(이질적 전이학습)이, 자국 데이터만 학습한 개별 모델 대비 예측 오차(RMSE)를 약 40% 줄였습니다(52.5 → 31.5). RMSE는 예측이 실제에서 평균적으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나타내는 오차 지표로, 낮을수록 좋습니다.
상대 지표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차를 실제 데이터의 출렁임(표준편차)에 견준 값(RMSE/SD)이 0.37로, 개별 모델들의 0.62~0.75보다 낮았습니다. 실제 변동을 얼마나 설명하는지 나타내는 R²는 0.82였습니다.
이 차이가 우연인지도 확인했습니다. 30개 나라 각각에서 두 방법의 오차를 짝지어 비교하는 Wilcoxon 부호순위검정을 쓰면, 개별 모델들과의 차이는 모두 p<.001, 무작위로 소스를 고른 전이학습과의 차이는 p=.009, 그리고 비슷한 나라를 고른 전이학습과의 차이도 p<.001이었습니다. p값은 ‘이 정도 차이가 우연히 나올 법한 정도’를 나타내는 눈금으로, 관례적으로 0.05보다 작으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정리하면, 비슷한 나라에서 배우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가장 다른 나라에서 배우는 쪽이 일관되게 더 나았습니다. 통념과 반대 방향입니다.
3. 더 이상한 발견 — 이득이 ‘가장 다른’ 구간에만 몰렸습니다#
여기까지라면 “다를수록 좋다"는 새 직관으로 갈아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소스 국가들을 목표 국가와의 이질성 기준으로 네 구간(사분위)으로 나눠 봤습니다. Q1이 가장 유사한 구간, Q4가 가장 이질적인 구간입니다. 30개국 평균 예측 오차(RMSE)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 구간 | Q1 (가장 유사) | Q2 | Q3 | Q4 (가장 이질적) |
|---|---|---|---|---|
| 평균 RMSE | 35.29 | 34.26 | 34.21 | 31.00 |
Q1, Q2, Q3는 통계적으로 서로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Q4만 Q1 대비 오차가 12.1% 낮았고, 이 차이만 유의했습니다(p=.008).

그림 2. 소스 국가를 이질성 기준 네 구간으로 나누면, 유의한 오차 감소는 가장 이질적인 Q4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세로축은 0에서 시작합니다.
그림의 세로축은 0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낙폭이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정확한 인상입니다. 축을 잘라 차이를 부풀리는 것은 이 블로그가 반대하는 바로 그 습관입니다. 완만하지만 통계적으로는 분명한 차이, 그것이 이 결과의 크기입니다.
이득이 유사도 눈금을 따라 서서히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극단에만 몰렸다는 점이 이 연구에서 제일 이상하고, 제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조금 다른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다를 때에만 도움이 됐습니다.
직관과 반대인 결과일수록, 직관이 아니라 데이터로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4. 제 해석 — 비슷한 나라끼리는 ‘사투리’까지 함께 배웁니다#
여기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겠습니다. 논문이 데이터로 확인한 사실은 3절까지입니다. 왜 하필 가장 이질적인 구간에서만 이득이 몰리는지, 그 메커니즘은 논문도 아직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위에서,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표준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한 지방 사람들에게만 말을 배우면, 그 지방의 사투리까지 표준어인 줄 알고 함께 익히게 됩니다. 비슷한 나라만 모아 학습한 모델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그 나라들이 우연히 공유하는 국지적 습관 — 집계 방식, 보고 주기, 유행이 지나간 시점 같은 것들 — 까지 전파의 일반 법칙인 것처럼 함께 외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충분히 이질적인 데이터가 섞이면, 그 모든 차이를 뚫고 살아남는 전파의 공통 문법만 남습니다.
이 설명은 결과와 잘 들어맞지만, 어디까지나 결과에 들어맞는 가설이지 논문이 입증한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가 다음 연구입니다.
실무 관점에서 덧붙일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 방법은 자국 데이터가 아직 쌓이지 않은 신종 감염병 초기에 실제로 집어 들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둘째, 이 결과는 무거운 파운데이션 모델이 아니라 가벼운 TCN 하나로 얻었습니다. 계산 자원이 제한된 현장에서는 이 차이가 작지 않습니다.
5. 한계를 그대로 읽기 — 이 잣대는 제가 만드는 모델에도 적용됩니다#
이제 이 결과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한계는 분명합니다.
첫째, 평가 구간이 팬데믹 후기의 저발생 시기 한 구간입니다. 발생이 폭증하던 시기에도 같은 결론이 나올지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하루 앞 예측만 검증했습니다. 일주일 앞, 한 달 앞을 내다볼 때도 이질적 전이의 이득이 유지되는지는 이 논문이 답하지 못합니다.
셋째, 방금 말씀드린 대로 왜 이득이 극단에 몰리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작동하는 이유를 모르는 방법은, 조건이 바뀌었을 때 언제 작동을 멈출지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림 3. 이 연구의 평가는 팬데믹 후기 저발생 시기 한 구간, 하루 앞 예측에서 이뤄졌습니다. 결과에는 이 조건이 함께 붙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은 저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저는 논문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감염병 예측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구간의 데이터로 검증했는가. 몇 걸음 앞 예측까지 검증했는가. 왜 잘 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이 글이 논문 한 편에 들이댄 잣대를, 제가 현장에서 만드는 다른 예측 모델들이 자동으로 통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질문 앞에 같은 방식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저장해 가실 것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판단 기준 하나입니다.
‘당연한’ 데이터 선택일수록 검증하십시오. 직관은 가설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그림 4. 직관은 가설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당연해 보이는 선택일수록 검증이 필요합니다.
마무리#
가장 비슷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다른 나라에서 배운 모델이 나았고, 그 이득은 극단에만 몰렸으며, 이 결과는 저발생기·하루 앞 예측이라는 조건 안에서 확인됐습니다. 결과와 조건을 한 문장으로 같이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을부터는 ‘감염병을 예측한다는 것’ 시리즈에서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려 합니다.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엇을 근거로 예측하는지, 그리고 그 예측을 언제 믿고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를 조류독감 시즌에 맞춰 이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의 분야에도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검증해 본 적 없는 선택’이 있지 않으신가요?
관련 글#
출처#
[1] Lee, D. (2027). Heterogeneous transfer learning for robust infectious disease forecasting: A data-centric approach. Expert Systems with Applications, 332, 133728. https://doi.org/10.1016/j.eswa.2026.133728
[2] Johns Hopkins University CSSE. COVID-19 Data Repository. https://github.com/CSSEGISandData/COVID-19
[3]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Pandemic (COVID-19) Data. https://ourworldindata.org/coronavirus
본문 속 모든 수치(RMSE 52.5→31.5, RMSE/SD 0.37, R² 0.82, 사분위 35.29/34.26/34.21/31.00, 12.1%, p값)는 [1]의 출판본에서 가져왔습니다.
저자는 이 분야에서 AI Korea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제품·서비스의 홍보가 아닙니다.
예측 결과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포함합니다. 방역·환경 정책 의사결정의 단독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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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Social Science & AI융합학부 교수이자 한국인공지능 주식회사(AI Korea Inc.)의 대표입니다. 이 글의 견해는 저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 기관이나 연구과제 발주처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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